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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한 조각, 추억 한 입

친구의 짝사랑이 전해준 선물

  고등학교 2학년 때의 일이다. 당시 내 짝이었던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는 독서 동아리에서 활동했고, 같은 동아리에 있는 일어과(외고) 여학생을 좋아하고 있었다. 

  어느 날이었다. 쉬는 시간이 되자 그 친구는 교실 밖으로 나갔고, 잠시 후 들어와 자리에 앉으며 뭔가를 나에게 건냈다.

    "니 이거 가질래?"
   "이게 뭔데?"


델리스파이스 1집 앨범




  그가 건낸 것은 빨간 글씨로 'TOWER RECORD'라고 적혀있는 노란색 비닐 백이었고, 그 안에는 델리스파이스라는 그룹의 1집 앨범 테잎이 들어있었다. 델리스파이스는 당시에 많이 유명하지는 않았지만 '너의 목소리가 들려~'라는 후렴구가 반복되는 '챠우챠우'라는 노래가 어느정도 알려지긴 했었다. 나는 라디오에서 그 노래를 들어 본 적 있었는데, 곡이 너무 마음에 들어 삐삐 컬러링으로 지정했었다.(내 기억으로 우리 반에서 내가 제일 마지막까지 삐삐를 사용했다;;) 그 정도로 관심있는 밴드였기 때문에 친구가 그 테잎을 건냈을 때 기분이 좋았다.

    "이거 내 주는거가?" 
   "어, 걍 니 가지라. 선물이다."
   "ㅎㅎ 내 생일도 아닌데.. 암튼 고맙다. 잘 들을께~"

  그 테잎을 받을 당시에는 무슨 사연이 있는지도 모른 채, 단지 친구 사이의 우정의 선물(?) 정도로만 생각했다. 얼마 후에야 대강의 사연을 듣게 되었는데, 사연인 즉슨... 
   그 친구가 좋아하던 여자아이에게 주려고 그 테잎을 사서 그 여자아이 반 교실 앞까지 갔다가 용기를 내지 못하고 다시 돌아왔던 것이었다. 그러고는 교실로 돌아와 그 테잎을 나에게 주었던 것이다. 왜그랬는지 정확한 이유는 듣지 못했지만, 그 친구가 나에게 테잎을 건낼 때는 뭔가 힘이 빠져있었고, 포기하는 듯한 자세였던 것 같다. 

  아무튼 나는 그 친구가 준 델리스파이스 1집을 열심히 들었다. 챠우챠우 말고도 전 곡이 다 좋았다. 당시만 해도 인디밴드라는 개념이 정말 생소했었던 것 같은데 그 친구 덕분에  좋은 음악을 접할 수 있었다. 그 친구가 또래 친구들에 비해 다양한 음악을 들었던 기억이 난다. 솔직히 그 나이 때에 좋아하는 여자아이에게 델리스파이스 앨범을 선물할 애들이 몇이나 될까?  
   
  델리스파이스 1집이 나에게 준 영향은 꽤 크다. 그 앨범을 통해서, 뭐랄까 밴드 음악을 좀 알게 되었다고나 할까?  나에게 베이스 기타의 소리가 얼마나 좋은지 알게 해준 앨범이다. 이후에도 나는 델리스파이스 음반을 사서 듣기도하고 , 자연스레 다른 인디밴드의 음악도 거부감 없이 듣게 된 것 같다. 

  요즘은 델리스파이스가 음반을 낸지가 꽤 되었다. 대신 델리스파이스의 리더인 김민규 형님은 '스위트피'라는  이름으로 솔로 활동을 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김민규 형님의 목소리를 참 좋아한다. 목소리는 화려하지 않고 그냥 평범하게 부르는 것 같은데, 노래 잘한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부드러운데 호소력이 있다고 해야하나? 

  어디서 보니 델리스파이스 음반이 곧 나올거라는 얘기도 있던데, 제발 나왔으면...
 
  이건 글쓰다가 생각 났는데, 내가 삐삐 컬러링을 '챠우챠우'로 해놨을 때였다. 하루는 어머니께서 "너 왜 컬러링에서 귀신 같은 소리가 나오니?" 하셨다. "네?" 하고 생각해보니 '챠우챠우'의 반복되는 후렴구 '너의 목소리가 들려~' 하는 부분이 어머니께는 그렇게 들렸던 모양이다. 그래서 다시 내가 들어보니 이 노래를 아는 사람이면 모를까, 처음 듣는 사람들, 특히나 어른들은 좀 이상하게 들릴법도 했다. 저음으로, 마치 주문을 거는 것처럼 '너의 목소리가 들려~' 만 반복되니 말이다.

  마지막으로 그 친구는 의대에 진학해서 지금 의사가 되는 과정을 밟고 있는 것으로 안다. 지금쯤이면 졸업했으려나? 아무튼 고등학교 졸업 후에 개인적으로 연락을 한적은 없고, 가끔 다른 친구들을 통해 소식을 듣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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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곳은...  (0) 2010.1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