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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so-so)하지만 깨알같은 일상

왼손잡이의 비애(?) #2

  직원이 9홀을 할지 18홀을 할지 물어봤다. 사실 골프가 첨이라 우리는 감이 없었지만, 김군은 18홀을 하자고 했고, 나와 이군은 9홀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다행히 먼저 결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해서 치면서 생각해보기로 했다. 본 게임에 들어가기 전에 직원이 연습해보라며 연습 모드로 세팅해주었다. 셋 다 경험이 없어 누군가 가르쳐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직원은 일한지 얼마 안되는 사람이었고 골프장 사장은 잠시 자리를 비운 상황이었다. 결국 우리는 각자 보고 들었던 골프 상식을 총 집합시켜 연습했다. 스포츠 채널에서 본 것들을 떠올리면서 이리저리 자세를 잡아봤다. 생각보다 공을 맞추기가 쉽지 않다. 헛스윙 남발, 공은 정면만 빼고 좌우로 날아갔다. 스마트폰으로 검색해서 자세를 찾아봣지만 따라하기 쉽지가 않았다. 

  결국 그냥 해보기로 하고 쉬운 난이도의 골프장을 선택해서 시작했다.  직원이 게임 셋팅 시에 우리 이름을 적어주는데 각자 성을 붙여서 김프로, 이프로, 문프로라고 쳤다ㅋㅋㅋ 좀 멋적었지만 기분은 좋았다. 아무튼 게임시작. 순서는 김군, 나, 이군. 김프로의 첫 티샷은 우측으로 벗어나 멋지게 오비. 공을 맞췄다는데 의의를 둔다. 다음은 나. 오비가 나지 않은 것에 만족. 이프로는 매너있게 오비를 기록. 나의 단독 선두닷!

  이렇게 한바퀴 돌고 다시 김프로의 순서. 멋지게 샷. 그런데 화면에서 공이 나가지 않았다. 이상해서 또 쳐봤는데 역시였다. 우리가 뭘 잘 못 건드렸나 생각도 해봤다. 근데 뭐 샷 한거 말고 다행히 부순 건 없다. 직원을 불렀고, 직원이 처음 부터 다시 셋팅해주었다. 그러나 아까와 똑같은 상황이 벌어졌다. 한번씩 티샷을 하고 다음에 치려고 하면 화면에서 공이 나가지 않았다. 결국 직원은 방을 옮겨 주었다. 좀더 작은 방이지만 골프채가 더 좋아보였다. 새로운 마음으로 다시 해본다. 그런데 아까와 또 같은 문제 발생. 김프로는 자신의 차례에 계속 문제가 발생하자 자신에게 문제가 있는 것 아닌가 생각하기도 했다. 결국 직원이 어떤 아저씨 한분을 데리고 왔다. 사장은 아닌 것 같고.. 암튼 그 아저씨가 시험삼아 드라이브 샷을 해봤다. 워~ 정말 파워풀한 샷이다. 그러나 공이 나가지 않는다. 다른 아저씨 한분이 더 와서 이리저리 살펴보다가 센서 문제가 아닌가 살펴봤다. 센서에 뭐가 묻은 것 같다며 이리저리 닦고, 덮개를 열어 살펴본다. 그러나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그러다가 결국 한 아저씨가 화면을 보고는 문제를 발견했다. 그것은 우리의 골프 지식 부족에서 나온 것이었다ㅎㅎ 각자 티샷 후, 두번 째 샷 부터는 공을 바닥에 놓고 쳐야 하는데 우리는 계속 티[각주:1] 위에 놓고 쳤던 것이다. 두번째 샷이라 공을 바닥에 놓고 쳐야 센서가 인식하는데, 너무나 친절히(?) 티위에 공을 올려 놓는 기계 덕분에 우리는 두번째 샷도 계속 티 위에서 쳤던 것이다. (실제 골프장이었다면 마지막 퍼팅할 때도 티위에서 치는 꼴 아닌가ㅋㅋ) 골프 지식 부족으로 생긴 일이라 서로 바라보며 웃기만 했다. 이러면서 배우는 것 아닌가ㅎㅎ 

  암튼 그렇게 다시 우리는 게임을 시작했다. 그런데 더 어려워졌다. 티 위에 올려 놓고 칠때는 공이 그나마 맞았는데, 바닥에 놓고 치니까 공이 더 안맞는다. 왠지 땅을 칠 것 같기도 하고... 결국 아무도 공을 넣지 못하고 첫 홀을 모두 최다 허용타수를 넘기고 말았다. 그즈음 사장님으로 보이는 분이 들어와서 인사를 했다. 뭐 불편한 것 없느냐고 물어보셨다. 김프로가 대표해서 골프 지도를 부탁했다. 사장님은 기꺼이 지도해주셨다. 그때서야 우리는 우리가 치던 채가 여성용이란 것도 알았다. 그제서야 우리는 왜 골프채가 좀 짧은 느낌이었는지 알게되었다. 사장님은 그립부터 자세까지 세세하게 지도해주셨다. 한 명씩 사장님이 보는 앞에서 샷을 해봤다. 나는 왼손잡이라 어색하다고 하자 사장님은 왼손잡이로 성공한 골퍼가 몇 안된다며 자신은 왼손잡이도 오른손으로 치도록 지도한다고 했다. 그런가 싶어서 가르쳐주는 데로 해보지만 역시 어색했다. 

  우왕좌왕 하는 동안 본게임도 못해보고 벌써 2시간 정도가 흘렀다. 사장님의 지도가 끝나고 진짜진짜 제대로 다시 시작했다.  배운 자세대로 하니 몸에 힘이 많이 들어간다. 그립도 쉽지 않고 이리저리 다 신경쓰려니 어렵다. 하지만 배운뒤로는 샷의 방향이 정면으로 많이 보완되었다. 물론 사장님이 프로그램 셋팅을 초보자로 해준 것이 컸다. 샷 방향이나 거리가 자동 수정되는 놀라운 기술. 우리가 실제로 친공은 바닥을 굴러가는데 화면에서는 100미터정도를 날아간다. 현실과 다르지만, 우리가 진짜  친 것 처럼 좋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첫 홀에서는 아무도 공을 넣지 못했다. 겨우 그린에 올려놓기는 했지만 퍼팅이 쉽지 않았다. 두번째 홀에서 김프로가 더블 보기(double bogey/bogy/bogie)로 한 타 차이로 앞서나갔다. 그 다음 홀에서는 내가 보기로 다시 역전. 뭐 이런 식으로 계속 진행되었다. 이프로도 더블보기 한번하고.. 한 홀당 기본 7번 정도 스윙을 하다보니 체력적 한계가 왔다. 왼손잡이라 오른쪽으로 치는데도 왼팔에만 힘이 들어갔다. 18홀은 커녕 여섯 번째 홀부터 급격한 체력저하가 나타났다. 안그래도 못치는데, 체력이 딸리니까 집중도 안되고 더 공을 못 맞췄다. 결국 힘도 들고 시간도 너무 많이 흘러 8홀을 끝으로 나왔다. 김프로는 좀 아쉬워했다. 

  아, 8홀까지 최종 스코어는 김프로가 1위, 내가 2위, 이프로가 그 뒤를 이었다. 오른 쪽으로 쳐서 좀 답답했지만, 오른손 잡이들과의 게임에서 중간은 했다는데 의미를 두기로 했다. 그렇다고 왼손으로 쳤다면 더 잘쳤을 거라고 자신있게 말하지는 못하겠다. 그런 점에서 앞으로도 계속 오른손으로 치는 게 나을 수도... 변명의 여지를 남겨야지ㅋㅋ 

  골프 후에는 이프로가 추천한 닭갈비를 먹으러 갔다. 가게 문 옆에는 자신이 춘천 출신임을 강조하는 가게 주인의 운전면허증 확대 사진이 걸려 있었다. 운전면허증 홍보가 무색하지 않게 닭갈비는 맛있었다. 양도 많아서 마지막에 밥 볶아 먹은 것을 후회할 정도였다.

  절묘하게도 이 글을 쓰는 동안 그 때 갔던 골프장에서 문자가왔다. 우리는 마지막에 회원가입 비슷한 걸 하면서 전화번호를 남겼었다. 20번 오면 공짜였나? 8월엔 좋은 일만 가득하길 바란다는 안부문자. 그 골프장 이름이 홀인원 스크린 골프란 걸 방금 알았다.

 
  1. 티(Tee) : 골프에서 각 홀마다 첫 공을 칠 때 공을 올려 놓는 도구.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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