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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so-so)하지만 깨알같은 일상

순천여행 #5

  선암사를 벗어나 조금 올라가다 보면 대각암이라는 암자가 나온다. 들어가 볼까 했지만 시간도 촉박했고, 대각암 앞쪽 공터에서는 포크레인을 동원해 공사를 하고 있어서 지나치기로 했다. 대각암 왼편으로 난 산길을 따라 산을 올랐다. 

  초반에는 날씨도 좋고, 경사도 급하지 않아 성큼성큼 산을 올랐다. 바람이 불긴 했지만 길 양옆으로 늘어선 싸리 같은 것들이 막아 주어 포근한 느낌마져 들었다. 멀리서 산을 바라 보았을 땐 아직 단풍이 남아 있는 듯 했으나, 막상 산을 올라보니 거의 찾아 볼 수 없었다. 


 
우리를 맞아 준 고마운 단풍나무 한그루

 

  산을 오를수록 경사가 조금씩 높아지고 숨이 가빠졌다. 중간중간 쉬면서 선암사에서 떠온 물로 목을 축였다. 30분 정도 올랐을 때는 처음에 입고 있던 두꺼운 점퍼를 벗고, 얇은 옷으로 갈아입었다. 잠쉬 쉴 때는 선암사 매표소에서 얻은 조계산 등반지도와 스마트폰을 이용해 현재 위치를 계속 확인했다. 산 속이었지만 생각보다 3G 신호가 잘 잡혀서 현재 고도와 위치를 확인할 수 있었다. 

  평일이였고, 가을 단풍이 끝물이라 그런지 다른 등산객들을 찾아 볼 수 없었다. 한참을 가서야 산을 내려오는 아저씨 한 분을 만날 수 있었다. 처음보는 사람이라 반가운 마음에 인사도 나누고, 정상까지 얼마나 남았는지도 물었다. 돌아오는 대답은 우리의 기대와 달랐지만, 많이 가까워진(?) 정상을 보면서 힘을 냈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표면이 하얀 나무들을 볼 수 있었다. 특정 고도에서만 군락을 이루는 나무들 같았다. 사진을 찍지 못해 아쉽다. 산행 중에는 시간도 촉박했고, 힘이 들어 사진 찍을 정신이 없었다. 

  작은 약수터를 지난 뒤에는 산이 더 험해졌다. 정상에 거의 다달았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그때부터 하늘이 어두워지고 조금씩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잠시 후 빗 방울은 얼음 알갱이가 되어 떨어졌다. 우박까지는 아니었고 기온이 많이 떨어져 하늘에서 내려오는 도중에 얼어 버리는 것 같았다.  정상에 가까워질수록 바람은 거세지고 길은 갈지자로 심하게 굽어 있었다. 눈 앞에 보이는 모퉁이만 돌면 될 것 같았지만 새로운 길이 나타날 뿐 장군봉은 나타나지 않았다. 이 모든 것이 우리가 조금 만만하게 생각해서 일까? 조계산은 기분나쁘다는 듯 본 때를 보여주는 것 같았다. 맞은 편 산에 내리 쬐는 햇살이 약을 올리는 것 같았다.

  지친 발걸음에 땀도 식어버릴 때 쯤, 드디어  장군봉 정상에 올랐다. 때마침 비도 그쳤다. 





  정상에서는 사람들을 몇몇 볼 수 있었다. 아저씨 한분과 짧은 대화를 나눈 뒤에 보리밥 집을 향해 내려갔다. 
 




  참고삼아 조계산 등산로를 올려본다. 빨간색이 우리가 이동한 경로이다. 스마트폰 어플로 거리를 따져봤는데 10Km정도 이동한 것 같다. 사진을 클릭!





 
보리밥 집까지는 내리막이라 한결 수월하게 갈 수 있었다. 하지만 가을남자가 무릎 통증을 호소해 급하게 가지는 않았다. 나또한 내리막에서 무릎에 충격이 가해지는 것을 느껴 최대한 조심하면서 걸었다. 간간히 빗방울도 떨어졌고 거리도 생각보다 멀었다. 

  보리밥 집에 도착해서 한숨을 돌렸다. 배를 채우니 조금 힘이 났다. 밥을 다 먹어 갈 때 쯤, 밥을 먹던 비닐 하우스 위로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제법 큰 빗줄기인 것 같아 보리밥 집 근처 장안 마을로 내려가 시내로 나갈까도 생각했지만, 마을에 들어오는 버스가 많지 않다는 정보를 얻고 송광사로 길을 나섰다. 보리밥 집이 산 등성이 아래 쪽에 위치하고 있어, 송광사로 가기위해 다시 오르막을 올라야 했다. 비가 빨리 그치기만을 바라면서 서둘렀다. 

  시내로 가는 버스를 타기까지 시간이 아슬아슬해서 계속 시계를 확인하며 가야했다. 하지만 가을남자의 무릎 통증이 심해지는 것 같아서 오늘 집에 가는 것을 포기할까 고민도 했다. 서로 이야기를 나눈 끝에 원래 계획대로 가보기로 했다. 그의 의지가 강해보였다.

  서두른 끝에 어느새 눈 앞에 기와 지붕이 보이기 시작했다. 버스 시간까지 20분 남짓 남았을 때였다. 대밭 사이 길을 지나니 송광사의 모습이 나타났다. 송광사에서 버스 정류장까지 얼마나 걸릴지 몰랐지만, 일단 우리는 송광사의 모습을 사진에 담기 시작했다. 

  계곡을 끼고 있는 송광사. 그 모습이 운치 있어 보여 절 안으로 바로 들어가지 않았다.







 
  바깥쪽을 둘러보고 안으로 들어갈지 말지 고민 했다. 버스 시간이 10분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때 송광사 안 쪽에서 여자 두 명이 뛰어나와 다급하게 아래 길로 가는 것이 보였다. 순간 저들이 시내로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뛰어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가을 남자는 잠깐이라도 안을 보고 싶어하는 눈치였으나, 그랬다간 버스를 놓칠 것 같아 우리도 뛰어가자고 말했다. 버스 정류장까지 길은 잘 몰랐지만 아까 본 여자 둘을 따라 뛰었다. 4시간 넘게 산을 탄지라 다리가 무거웠다. 앞선 여자들과 거리가 좁혀지지 않았다. 무릎이 안 좋은 그가 뒤쳐졌지만, 내가 먼저가서 버스를 잡고 있는 것이 나을 것 같아 우선 뛰었다. 

  송광사 매표소를 지나 상가건물 뒤로 버스가 정차해 있는 것이 보였다. 다행이였다. 뒤를 돌아보니 그가 아픈 무릎을 잡고 절뚝거리며 오고 있었다. 안쓰러웠다. 저렇게 아픈 줄 알았으면 천천히 내려올 걸 하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서두르기만 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에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어쨋든 버스를 탔고, 제 시간에 기차도 탈 수 있었다.


 
 

  1박 2일의 짧은 여행. 여행 한번 다녀왔다고 해서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다. 하지만 좋은 사람과  함께할 수 있어서 더 없이 소중한 시간이었다. 무엇을 더 바라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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