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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so-so)하지만 깨알같은 일상

단골가게

  얼마 전까지 생에 가장 느긋한 나날을 보낼 때는 아무것도 적지 않다가, 다시 분주해진 일과를 보내고 있는 지금에서야 글을 쓴다. 그만큼 내 일상에 중요한 일이 있었다.


  누구에게나 단골가게 하나쯤은 있게 마련이다. 그게 동네 슈퍼가 되었든, 만화방이 되었든 간에 말이다. 요즘은 동네 슈퍼나 구멍가게란 말 보다 편의점이 더 흔한 말이 되었고, 온라인 쇼핑몰에도 단골이 있을 법하다. 국민학생[각주:1] 때는 학교 앞 문구점과 만화책이 가득했던 이발소가 생각나고, 고등학생 때는 친구들과 매달 토요일마다 가던 학교 앞 미용실과 피씨방이 생각난다.

  

  현재 나에게 단골가게라고 할만한 곳 중 하나는 미용실이다. 오늘은 그 얘기를 해보려 한다.


  처음 가기 시작했던 때가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아마 제대 후 복학 하고 얼마지나지 않았을 때 쯤인 것 같다. 마음에 드는 미용실이 없어 고민하던 중에 동생한테 물었더니, 양산 시내[각주:2]에 '현'이라는 미용실이 있다고 했다. 남학생들이 많이 간다고 하기에[각주:3] 뭔가 믿음이가서 처음 발을 들이게 되었다.


  그 때만 해도 지금과는 다르게, 직원 수가 5명 정도 되는 작지 않은 규모의 미용실이었다. 계속 가게된 것은 역시 머리가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머리카락이 직모라서 잘 못자르면 옆머리가 많이 뜨는데, 이 곳 미용사들은 대부분 꼼꼼하게 잘 잘랐다. 다른 곳보다 신경써서 자른다는 느낌이 들었다. 집에서 가까운 거리가 아니었고, 학교에서 집에 오는 경로에서도 조금 벗어나 있었지만,  기꺼이 그 곳을 찾게 되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서서히 직원 수가 하나씩 줄더니 가게 유리벽에 '임대'라고 쓰인 천과 함께 이전을 알리는 안내문구가 붙어 있었다. 양산 사람들은 알겠지만, 신도시가 생기고 버스터미널이 신도시로 이전하면서, 원래 중심지였던 양산시장 근처의 상권이 점점 약해졌다. 그 영향으로 손님이 많이 줄어 내 단골 미용실도 신도시로 이전한다고 했다. 그리고 그 즈음에서야 미용실 남자 원장님과 마지막 남은 여자 미용사 한 분이 부부 사이란 것을 알게되었다.


  2년 전쯤 이전했는데, 이전하면서 이름도 바꾸고 가게 규모를 줄여 아파트 상가에 동네 미용실 크기로 부부끼리만 운영했다.  여전히 집에서는 거리가 좀 있었지만, 계속 찾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몇년 전에 파마 한 번 한 것 말고는 줄곧 커트만 했었다. 그러다가 지난해 10월에 무료한 일상에 변화를 주고 싶어 다시 한 번 파마를 결심했다. 몇년 전에 했을 때는 가격이 제일 싼 기본 파마를 했었다. 하지만 머리가 길어갈수록 축구선수 김주성의 전성기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스타일과 


   

 

  미용실에서 드라이를 해주던 그 느낌을 집에서는 살릴 수 없어서 애를 먹었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좀 비싸더라도 다른 파마를 해보기로 했다.  미용실에가서 이리저리 원하는 바를 얘기했다. 옆머리는 뜨지 않으면서 곱슬기도 심하지 않은 그런... 


  가격도 생각보다 비싸지 않았고, 머리도 맘에 들었다. 집에서 머리를 관리하기도 어렵지 않았다.  만족해서 곱슬기가 풀리면 다시 해야지 마음먹고 있다가, 어제쯤 가려고 생각하고 있었다.


  아침에 문자 오는 소리에 눈을 떴다. 문자를 확인하자마자 잠이 확 깼다. 


'그동안 ooo헤어를 애용해 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2월 25일부로 폐업합니다.'


  이제 어디가서 머리를 잘라야 하나라는 걱정과 함께 왜 폐업하는지 궁금해졌다. 장사가 안되서 그런가 생각했지만, 내가 주로 손님이 뜸한 낮 시간에 간다고 가는데도 기본 한 두명 정도는 기다려서 잘랐기 때문에 쉽사리 납득이 가지 않았다.


  아무튼 아쉬운 마음으로 마지막 파마를 하러 길을 떠났다. 폐업을 알렸음에도 손님이 꽤나 있었다. 내 차례가 되어 자리에 앉자마자 자연스레 폐업얘기를 물었다. 생각대로 장사가 안되서 그런 건 아니란다. 부부가 오래 하다보니 지겹기도 하고 집을 돌볼 시간도 부족해서 업종을 바꾸기로 했단다. 같은 자리에서 피자 체인점을 할 거라고 했다. 


'겨.. 겨우 피자체인점이라니ㅠㅠ  내머리는 이제 어쩌라고ㅠㅠㅠㅠ'


  왠지 파마약 냄새가 더욱 독하게 느껴졌다. 

  

  씁슬함을 삼키며 대화를 이어갔다. 브랜드 이름을 들어보니 우리가 흔히 아는 유명 체인은 아니었다. 이제 서울 쪽에서 막 생겨나기 시작해서 경남에는 거의 없다고한다. 친구가 덕계 쪽에서 하고 있는데, 장사가 꽤 잘된다고 한다. 


  나 이외에도 오는 손님들 마다 아쉬움을 나타냈다. 폐업이라는 화제 덕분에 2시간 여의 긴 파마 시간동안 지난 5년간 미용실에서 했던 대화보다 더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마치고 나오는 길에  

"가게 오픈하면 한번 오세요"  "그럼요^^" 라는 형식적인 것 같지만 나름 따뜻한 인사를 나누며 돌아섰다.


  5년이 넘는 시간동안 거의 매달 오던 곳을 못 오게 된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허전함이 느껴졌지만, 2달전 사용해서 얼마 남지 않은 적립 포인트가 그나마 위로가 되었다. 포인트가 안쓰고 남겨놨으면 억울함마져 더해졌었으리라...


  이런 저런 생각과 함께 예전 단골가게들이 떠올라 오랜만에 글을 끄적여 봤다. 


  이제 머리 어디가서 자르나? 


  집에와서 또 동생에게 물었다.

  




  1. 마지막 국민학교 세대라 '초등학생'이란 말 대신 '국민학생'으로 표기해봤다. [본문으로]
  2. 지금은 구 시가지가 된 구 양산터미널 근처 [본문으로]
  3. 당시 동생은 고등학교 졸업 직후였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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